[영화] 픽사의 23번째 장편 영화, 피트 닥터 - 소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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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시간의 소중함, 단풍 씨앗이 단풍 나무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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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좋지 않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감기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하더니 찾아온 것 만큼이나 갑자기 지독해지기를 반복했다. 주말을 꼬박 기침과 오한으로 보내도 컨디션이 회복되질 않아 모처럼 월요일에 연차를 냈다. 반쯤 약 기운에 또 반쯤은 전기장판에 몸을 내맡기고 소울을 보기 시작했다.
22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개봉한 픽사는 2020년, 23번째 장편 영화인 <소울>을 개봉했다. 재즈 연주만이 살아갈 이유인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와 지구에서 태어나기 싫어하는 영혼 22(티나 페이)를 주인공으로 지구와 영계를 넘나 들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탬프를 모두 모아 지구 스티커를 완성한 영혼은 지구에서 태어날 수 있다. 모든 영혼 의 마지막 스탬프는 서로 다른 이유로 찍히는데, 처음에는 재능 혹은 특별한 꿈이나 죽는 한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어떤 불꽃을 찾는 과정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스탬프를 찍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호기심과 살고 싶다는 의지였다.
위인들은 저승으로 가기 전 영혼들의 멘토를 지내게 되는데 간디, 테레사, 카를 융을 비롯한 어떤 위인도 22에게 삶의 의지를 알려주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조와 함께 지구로 떨어져 조의 몸으로 살았던 순간들이 22를 변화시켰고 마침내 지구 스티커를 완성하게 된다. 다시 지구로 향할 수 있었지만 조의 비난과 상처난 자존심으로 지구 스티커를 조에게 던져버리고 길을 잃은 채 타락한 영혼이 된다.
꿈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사고로 죽은 조는 22의 지구 스티커로 죽음을 거슬러 몸을 되찾고 도로테아 윌리엄스(안젤라 바셋)와 함께 꿈에 그리던 무대에서 재즈를 연주한다. 공연이 끝나고 감정이 북받친 조에게 수고했다며 내일 같은 시간에 또 연주하면 된다는 도로테아의 말은 조가 자신의 천명을 이루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을 단순한 일상으로 격하시켰다. 뮤지션이라면 기억에 남는 인생 무대가 있다지만 그게 삶의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도로테아의 태도는 이 모든 걸 깨달은 듯 보였다.
집에서 혼자 연주를 하다 22가 모아둔 행복의 조각들을 보고 삶을 깨닫는 조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도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소울>의 이 단풍나무 씨앗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면서 같이 깨달았다. 그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일상에 작은 즐거움을 느끼던 순간들이었다.
결국 22는 지구에서 태어나게 되고, 제리들의 보답으로 죽었던 조도 다시 삶으로 돌아간다. 생명은 아름답고 살아있는 것은 기적과도 같지만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앞으로의 조와 22의 삶에도 고난이 함께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의 소중함을 포근하게 상기시키는 멋진 영화였다.
이후 디즈니 플러스에있는 <22vs지구>라는 단편을 봤다. 자꾸만 지구에 친구들을 뺏기는 22는 일부 영혼들을 모아 다른 영혼들이 지구 스티커를 획득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계획한다. 하지만 이 방해 과정마저 영혼들이 지구 스티커를 완성하는 길이 되어버린다는 짧은 내용이다. 이제는 단풍 씨앗과도 같은 22의 영혼이 지구로 향한 것을 안다. 얼마나 큰 나무로 자랄 지 모르는 그 삶을 응원한다.
중간에 갑자기 한글이 등장해서 놀랐다. 디즈니 플러스로 나오면서 번역이 된 것인가 했는데 원래 한글이 등장했던 것이라 한다.
조가 공연을 준비하며 바버샵에 들리는 장면이 나온다. 바버샵에는 각자의 개성을 지닌 여러 흑인 엑스트라들도 같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소울> 제작 팀에 중간에 합류한 감독님의 제안으로 추가된 것이라고 하는데 흑인이시기도 한 감독님이 바버샵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팀을 설득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스토리에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입장에서 이 일련의 프로세스가 멋져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