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룰루 밀러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후기

작성 : 2023-04-22수정 : 202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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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yes24

출처 : yes24


별점

★★★★★


한줄평

전기와 회고, 과학과 철학을 오가며 혼란과 질서 속 삶의 이유를 찾아내기까지.


리뷰

룰루 밀러는 어릴적부터 아버지에게 들어온 ‘이 우주에서 너는 중요하지 않아, 너 하고싶은대로 살아.’ 라는 말에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추적하며 이 우주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아 나간다. 사실 나는 아버지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게 잘 공감되지 않았다. 내 선택에 이 우주가 변할 수 있다라고 했을 때 그 막중한 책임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행과 불행의 결과가 다 나의 선택 때문이라면 나는 선택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 같다. 별들이 반짝이는 어두운 밤하늘을 가만 올려다 보고 있으면 내가 이 우주에서 너무나 작은 존재라는 자각과 함께 묘한 평안이 찾아온다. “이 우주에서 너는 자유로운 존재야, 어떤 불행도 너의 책임이 아니야.” 라는 말로 들리기도 하는 아버지의 말은 삶이라는 무게를 조금쯤은 가볍게 만들어주는 말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모임에서 이야기하다가, 소통의 방식과 대상의 나이를 고려하지 못한 아버지의 어법은 잘못되었다 라고는 말이 나왔다. 이 우주에서 너는 자유로우며 존재만으로 중요하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라고 말을 해주었다면, 혹은 어린 아이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상처받지 않았을 거라고. 듣고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가상의 인물인 줄 알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라니. 주인공에나 어울릴 법한 이름으로만 이루어진 이름같아 되려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인물로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을 역임하였으며 어류 분류학 및 우생학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이 책이 나온 후에 변경되긴 했지만,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건물명을 근래까지 쓰고 있었다고 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따라가며 긍정적 착각이 극단적으로 발현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를 향한 모든 비판들은 필터에 여과되어 미덕이 되고, 지성인이자 권위자인 그의 말은 사실을 덮고 진실을 왜곡한다. 과연 이런 생각과 태도가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긍정적 착각은 그 순간에는 개인의 행복과 삶의 만족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대게 그런 사람들의 자기과시는 주변 사람들을 소외시키며 정작 본인은 알아채지 못해 사회적 측면에서 큰 비용을 치른다고 한다. 그의 긍정적 착각은 혼란을 질서화 시킨다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릴 에너지(그릿)이 되어주었지만 그가 잘못된 논리를 주장할 경우에도 비판이라는 바늘은 그의 심장을 찌르지 못한 채 부서져버리고만다.

(p.146)

그러다 종래에는 우생학을 주장하고 불임 수술을 법제화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가난, 범죄, 지능, 문란함, 정신상태 등은 모두 유전적 발현이며 인간이라는 종을 멍게처럼 게으르고 멍청한 상태로 퇴보시킨다고 보았다. (멍게야말로 종이 퇴보하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진실이 아니다.) 인류의 퇴보를 막기 위해 불임화 수술을 통해 유전자를 후세로 전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가진 강력한 긍정적 착각과 그릿은 어류 분류학을 넘어 우생학을 위한 불임화 수술 법제화마저 결국 이루고야 만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사상을 통해 삶의 이유를 찾던 룰루 밀러는 큰 충격을 받지만 많은 비극을 양산하게 되는 우생학에 근거한 불임화 수술의 합법화를 이루어낸 그는 과연 끝에 후회라는 감정을 느꼈을까, 생각해본다. 2천여 마리가 넘는 물고기 중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여한 물고기, 아노말루스 요르단. “서로 반대쪽에 위치한 두 면이 돌돌 말리듯 어디서 만나는지도 모르게 하나로 합쳐지는 뫼비우스 띠 모양의 그 가시 박힌 용”의 특징 안에 그의 마지막 감정이 담겨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p.151)

사실 내 생각에는 큰 이유는 없었지 않았나 싶은데, 모임원 중에서 책에 소개되지 못하는 아노말루스 요르단을 발견하였을 때의 어떤 모종의 일로 그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라는 의견도 있었다. 모든 걸 해부한 끝에 이 동물을 알게 되었다라는 의미로 이름을 붙여주는데 외양적 특징만으로 자기투영 혹은 자기 내면의 고백으로 이름을 붙였을까…? 잘 모르겠다.


책의 후반부에서 어류란 분류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진화적 관계에서 의미가 없는 개념이라고 나온다. 어류라는 범주가 모든 차이를 가리고, 미묘한 차이들을 덮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산지대에 사는 다양한 동물들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우연히 비슷한 외피를 가졌다는 이유로, 하나의 범주로 묶여버리는 것이다. 만약 어류가 존재하길 바란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도 어류다.

(p.240)

충격적이다.

책의 탄탄한 기승전결의 클라이막스는 나의 세상을 크게 흔들었다. 책의 제목은 이걸 위함이었구나. 혼돈 속에 질서를 찾는 것, 분류를 나누는 것은 그 안의 다양성을 모두 짓밟는 것이었구나. 인간이라는 종을 우월한 지위에 계속 올려놓기 위해서, 우리가 세상을 보다 “편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행해온 오만과 기만들이야말로 종의 유지를 위한 다양성을 해치는 일이었구나. 다윈이 종의 기원의 말미에서 종의 다양성에 대해 느낀 장엄함은 우리의 잣대로 판단하지 못할 혼돈 속에서 종을 유지해나가기 위해 선택한 다양성에 대해 느낀 장엄함이며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 혼란 속 우리는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


룰루 밀러는 어릴 적 아버지가 얘기한 “너는 이 우주에서 소중하지 않은 존재야”라는 말이 상처가 되어 나라는 존재가 중요하다는 증거를 찾아 헤맸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혼란을 질서로 만들고 하나씩 소중한 이름을 붙여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다가, 그렇게 인간이 정의내린 질서가 종의 장엄한 다양성을 해치는 일이란 걸 깨달으며 혼란 속의 우리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기에 이른다. 타산지석 반면교사 삼아 맹신하지 않고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찾아내는 여정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래, 우리는 관계 속에 모두 소중한 존재다.




P.S.

최정은 작가님은 생물학적 진화 관점에서 멍게를 신적 존재로 격상 시켜 멍게신을 숭배하는 가상의 종교를 만든 후, 이를 통해 인간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챔버 1965에서 해당 전시가 진행되기도 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멍게에 대해 서로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게 나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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