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개발 문화로 알아보는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 구축을 위한 5가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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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머리말
내 학창 시절은 친구들과 같이 갔던 PC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게임 하고 있지 않지만, 아직도 친구들과 종종 게임 이야기를 하거나 대회 영상을 보는 정도는 하고 있다. 그런데 개발자로서 개발 문화에 몸을 담그고, 직장인으로서 회사에 몸을 담근 채 살아가다 보니 게임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내가 했던 게임들이 커뮤니티이자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팀이었다는 것을 느끼며,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다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깨달음이라고 하니까 좀 거창하기는 하다.
그 시절,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창
젠장, 또 대상혁이야.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이하 롤)는 2008년에 처음 발표되어 북미 서비스를 거쳐 2011년 12월 12일, 한국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나는 이때 막 고등학교 3학년으로 진학하는 학생이었고, 그렇게 내 고등학교 3학년은 롤로 빼곡해졌다. 지금 롤은 2022년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으며(한국 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2023년에 진행된 월드 챔피언십 대회는 전 세계에서 1억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시청하는 등 높은 위상과 함께 e스포츠 성장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채팅창에서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게임, 이라는 약간의 오명과도 같은 밈이 소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롤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되긴 했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할 때도 그런 분위기였으니 아마 높은 확률로 지금도 사실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롤이 처음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당시에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게이머들은 서로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아니, 용서가 아니다.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부정적인 정서를 버리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없으므로 용서라는 것도 없었다. 아쉽게 한타에 패배하거나 전황이 불리해져도 이길 수 있다고, 미니언 경험치 이벤트가 시작되었다고, 역전이 더욱 재미있다고 서로 농담과 격려의 말을 건넸다. 한 명이 탈주해 수적으로도 불리한 4:5의 상황을 역전하는 경우가 나오기도 했다. 매주 공개되는 로테이션에 따라 챔피언을 처음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연습하고 싶다고 하면 하세요, 하며 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승리하든 패배하든 이런 긍정적인 상호작용은 게임에 재미를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생면부지의 사람과 유대를 느끼게 하고 이후에도 같이 게임을 하게 만들었다.
뉴비가 오지 않는 게임의 끝
뉴비 :풋내기, 새로 온 사람, 어떤 직업에 대한 무경험자.
고인물:어떤 한 분야에 통달한 사람 혹은 신규 유입이 적은 상태에 있는 오래된 사람.
게임 속에서 뉴비는 종종 과소평가 되거나 무시당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게임이 서로를 비교의 대상으로 삼아 경쟁적인 우월감을 자극하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유저를 자극 시킬 수는 있겠지만, 결국 게임의 장기적인 생존이나 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인 물은 썩고, 구르지 않는 돌에는 이끼가 낀다. 정체된 활력은 장작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점차 사그라들다 이내 꺼지고 만다. 잿더미만 남은 곳을 좋아해 줄 유저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뉴비의 존재는 게임 커뮤니티 건강에 있어 필수 불가결하다. 그들은 새로운 에너지와 다양성을 부여하는데, 마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피와 같다.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게임 경제의 한 축이 되어 경제가 순환할 수 있도록 만든다. 다양성에서 비롯된 새로운 관계는 게임 커뮤니티 내 결속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게임사에서 괜히 신규 유저나 귀환 유저를 대상으로 이벤트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끌어들이고 현재의 게임 시스템에 정착시키기 위함이다. 때로는 고인물들이 새로 캐릭터를 육성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를 알고 있는 고인물들은 뉴비들을 적극적으로 환대한다. 뉴비들이 전체 채팅으로 물어보는 질문에 상세히 답변하며, 친절히 안내해 주거나, 기꺼이 아이템이나 재화를 내어주는 등 도움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실제로 게임
<로스트아크>
에서 소매넣기를 당한 적도 있었다. 오히려 도움을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나있는 그들의 모습은 유저 수가 적은 게임에서 나타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안타까울 때도 있다.
자, 이제 누가 뉴비지?
자, 이제 누가 뉴비지?
우리는 살면서 새로운 기술이나 취미, 인간 관계 등 새로이 시작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겸손과 포용을 갖추어야 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거나,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항상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언제든 뉴비가 될 수 있으므로 열린 마음으로 뉴비를 환대해야 한다. 결국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것이고, 그들을 존중하는 것은 나를 존중하는 것이다.
때로는 3개월, 1년, 5년, 10년을 한 고인물들과 자꾸 비교하려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좋은 자극이 되어줄 수도 있지만, 자존감을 해치고 새로운 시도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스스로 여기서는 뉴비라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뉴비의 앞에는 새로운 도전과 성장의 기회, 그리고 성취의 단 맛이 준비되어 있다. 그들과 비교하며 부족함을 한탄하기보다 앞에 즐비해있는 다채롭고 풍족한 시간들을 소중히 누리면된다. 그들은 나를 환대해 줄 것이고, 조언을 건네줄 것이고, 나의 성장을 이끌어줄 것이다.
활발히 교류하는 개발 문화
개인적으로 개발자라는 직업을 선택해서 개발을 업으로 살아가며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는데, 바로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문화다. 다양한 개발자들이 서로 다른 관점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하며, 기술의 경계를 확장한다.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일종의 위안과 등불이 되어주기도 한다.
StackOverflow는 개발자들이 지식을 주고받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요즘은 트래픽이 감소하고 있다지만 Google과 StackOverflow가 없다면 개발자로 일을 못 했을 것이다, 라는 말은 언제나 진심이다. Github와 NPM에는 전 세계의 개발자들이 코드를 공유하고 협업하며 만들어내는 수많은 오픈 소스 프로젝트들이 있다. 위 사진에서 StackOverflow에서 복사한 코드만 아스팔트가 깔린 매끈한 표면의 도로인 것을 볼 수 있는데, 많은 개발자가 협력해 만들어놓은 코드가 개인의 코드보다 얼마나 뛰어난 지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아서 이 사진을 가지고 오게 되었다. React가 주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는 개발자들을 끌어들이고 오픈 소스 커뮤니티를 구축하기 위해 문서화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이 매우 유효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콘퍼런스, 해커톤, 커피챗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모여 지식과 경험을 공유한다.
이렇게 개발자들은 인터넷 망을 통해 개인의 지위와 경험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파급력은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이 증명해주고 있다.
서로에 대한 심리적 안전감이 필요하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 집단 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느낌.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토대 위에서 서로 의견을 존중하는 집단은 실패와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유로운 의사소통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 있으며, 어떤 상황도 성장을 위한 기회로 삼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결국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극대화 시키고 상호 간에 연결고리를 튼튼하게 만든다. 구성원의 성장과 함께 오는 이탈 방지의 효과는 복리의 마법처럼 시간이 갈수록 생산성을 극대화시킬 것이다. 심리적 안전감이 존재하지 않는 활발한 교류는 서로를 해치는 화살이 되거나 사람들을 가면 뒤에 숨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절대로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겉으로만 추구되는 가치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모든 구성원들의 말과 행동에 스며들고 의식의 저변까지 확대되어 느낌이라는 깊숙한 영역에서 활성화되어야 한다.
실수와 실패는 학습의 기회로 여기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여 모두가 자유롭게 표현함에 있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피드백, 팀 미팅, 개방적인 대화 채널 등의 방법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무안과 창피를 주거나 대화를 음지에서 진행하는 것은 금물이다. 좋은 생각이 아니라거나, 왜 그런 말을 하는 지 모르겠다거나, 네 일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등의 부정적 피드백만 제공하는 것은 침묵하게 만드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고백하자면 개발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유머로 승화시킨 위의 대화에는 내 개인적인 공감과 체험이 담겨 있기도 하다. 개발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쉽지 않다. 같은 개발자라고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건 다소 나이브한 생각으로 그런 경우는 대개 같은 개발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서로 잘 맞거나 한쪽이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발에는 코드 리뷰라는 피드백을 기본적으로 내재한 단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이를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좋은 피드백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들의 고민은 심리적 안전감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위의 대화 이후로 남편과 아내가 웃으며 달걀을 6개 사 오길 원했다며 뜻을 명확히 하고, 서로 오해가 생긴 부분에 대해 원인을 이야기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소통할지에 대해 정의하는 상황이 뒤따랐기를 바란다. 그 뜻이 아니었다고 멍청하다고 비난한다면, 서로 기분이 굉장히 상하게 되었을 것이다.
꼬리말
꼬리말
위에서 얘기한 내용들은 사람이 모인 집단이라면 어디서든 통용된다.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토대 위에서, 뉴비를 환대하고 지원하며, 상호 존중과 지지를 통해 활발히 교류하는 집단은 어떤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이 건강한 토대는 뉴비를 새로 끌어들이며 더욱 견고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만드는 선순환을 자아낸다. 게임성이 떨어지더라도 견고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게임은 서로가 서로의 콘텐츠가 되어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다.
말 뿐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지라도 누군가는 이런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내가 존중받기 위해서라도 남을 존중하는 것, 남에게 가벼운 한 마디의 응원을 건네는 것 등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기껏 수십 년 사는 삶, 우연히도 나와 함께 살아가는 그 사람들을 환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