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변화로 보는 요즘 과학이 인기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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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머리말
요즘 사회에는 과학이 팽배해진 것 같다. 유튜브나 TV에서도 과학 이야기를 보고, 책을 읽고, 오프라인 강연까지 신청하는 나는 문득 이 시대는 왜 과학에 열광하는가? 에 대해 생각해봤다.
누리호 발사에 전 국민이 응원을 보내고, 동료 평가도 거치지 않은 초전도체 논문이 대중과 커뮤니티를 휩쓴다. 서점에는 과학 서적이나 인문학을 과학으로 풀어낸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예능 프로그램 ‘알쓸별잡’에서는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님이 과학 이야기를 해주시고, 유튜브 ‘안될과학’ 채널을 비롯해 여러 방송과 행사에서 과학을 설파하시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님은 최근 넷플릭스의 ‘데블스 플랜’까지 출연하셨다. 출연한 이유는 24시간 과학 이야기를 해서 170개국에 공개할 수 있어서라고 한다.
(진짜 광기)
미국에 칼 세이건을 이은 유명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있다면, 한국에는 궤도가 아닐까 싶다. 다시 돌아와서 이제 사람들은 무언가를 정의하거나 인과를 따져보기도 하고 양자역학과 블랙홀이라는 매력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흥행에는 이 시류의 영향도 무시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과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한 즐겁지 못한 분야라고 생각했다. 물론 수학보다는 나았지만 말이다. 이건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아마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즈음부터 과학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유튜브에 올라온 김상욱 교수님의 강연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여행과 자신감의 시대
여행과 자신감의 시대
내 기억에 약 20년 전, 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에는 여행의 시대였다. 청춘이라면 누구나 배낭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며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인해 주체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라는 거의 맹신에 가까운 분위기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 분위기의 영향으로 약 보름 간의 유럽 여행을 다녀왔었던 것 같다. 절반은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긴 시간을 내기 힘들어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김영하 작가님이 책 ‘여행의 이유’에서 쓰신 것처럼 여행에는 인간의 본성적인 면도 있다.
또한 모든 것은 내가 하기에 달렸다는 도취감이 부서져 내리는 시기이기도 했다. 20세기 후반 연 10%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고, IMF 외환위기마저 극복해 낸 시대가 가진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이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필두로 무너졌다.
공감과 위로의 시대
공감과 위로의 시대
이후 2010년 대에는 공감과 위로의 시대가 왔다. 너의 힘듦을 나도 충분히 공감하며, 네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네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 있다, 그러니 너는 자책하지 말라는 위로다. 감성적인 글귀나 자신의 트라우마를 고백하고 이겨내는 에세이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어떨 때는 무기력과 자포자기에 더 가깝기도 했던 그런 위안을 시대는 갈망했다. 어느덧 피로사회가 되어버린 시대에 지친 사람들이 존재 자체에서 의미와 이유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베르 카뮈의 실존이나 니체의 초인 사상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이쯤부터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거나 기피되던 현상들도 양지로 많이 올라온 것 같다. 그 위로의 시대 속에서 사회는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공정과 과학의 시대
공정과 과학의 시대
공정성에 대한 흐름으로 이제는 과학의 시대가 도래했다. 과학적 사고에 담긴 합리성과 공정함 그리고 서로 경쟁하면서도 인정하며 오직 답을 추구해나가고 위대한 발견도 거인의 어깨 위에 있기 때문이라는 겸손에서 사람들은 위안을 받는다. 최근 송길영 박사님은 유현준 교 수님의 유튜브 채널인 ‘셜록현준’에 출연하셔서 지금 시대는 핵개인의 시대로 변화했으며, MZ라고 표현되는 세대의 특성은 사실 시대의 변화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 시대는 합리와 공정이 중요하다. 부정입학을 비롯해 특혜라는 것에 극단적으로 반발한다. 집단주의적 사고가 아닌 ‘나’라는 존재에 집중한다. 여기서 과학은 이 시대의 방향과 굉장히 어울리는 학문이다. 과학은 합리를 설명하고 수학은 그 언어다. 비교 가능한 수로 측정되어지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숫자로 환원시키는 자본주의와도 결이 맞으며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정의 척도로도 삼을 수 있다. 공정함이란 공평함과는 다르다. 모두가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일 선상에서 출발해야 하며 개인의 능력으로 성취하는 것은 정당하다. 이 능력주의에 대해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통해 사회가 정말 공정한 지, 그리고 공정함이 정말 정의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꼬리말
꼬리말
교과과정이 계속 변화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대부분 몇몇 교과목을 통해 측정된 등급으로 경쟁하던 사람들이 사회로 나왔다. 잘 살아간다는 건 몇몇 교과목 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미지의 세상에 내던져진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을 찾고, 종교를 찾고, 철학을 찾았으며 공감과 위로를 필요로 했다. 이제는 그게 과학까지 확장된 것이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국가, 인종, 성별 간 갈등이나 환경 문제 등 여전히 살아가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앞으로 또 시대가 어떻게 바뀌게 될 지는 모르겠다.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일련의 흐름이 시대가 어디에 열광하는 지를 만드는 것 같다. 뉴턴 역학이 등장함으로 인해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듯이 지금의 시대 또한 어딘가로 향하는 흐름 위에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어떤 시대가 도래할까?